지난 해에 비해 그림책 부문의 응모 작품 편수는 줄었으나, 오히려 심사 과정은 명쾌한 합의를 거쳐 흔쾌히 결정되었습니다.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그림책 더미북은 <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몰라>와 <빨간 등대> 두 편이었으나,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주로 <빨간 등대> 한 편에 모아졌기 때문입니다. <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몰라>는 우리 그림책 시장에서 상당 기간 유행하고 있는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그림 스타일로서, 주인공 아이가 자기 욕구와 충동대로 움직이면서 겪는 현실에서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데 적절한 듯 보입니다만, 서툴고 안이한 결말로 인한 빈약한 스토리텔링 탓에 작가적 열정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. 그에 비해 <빨간 등대>는 훨씬 전문가적 기량이 느껴지는 판화 작품으로, 한 장면 한 장면이 정통 회화(fine art)에 가까운 감흥을 자아냅니다. 사막처럼 황폐해진 세상에서 제각기 홀로 웅크린 채 어둠과 추위와 고독을 이겨내고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빨간 등대가 내뿜는 빛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란히 걷기 시작합니다. 하지만 고된 여행 끝에 다다른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. ‘멀리서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’라는, 이른바 ‘파랑새/희망 찾기’ 주제의 변주곡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가 판화 특유의 반복 패턴과 단단한 색감으로 안정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. 과다하게 둘러쳐진 검정 테두리, 만화와 예술적 조형성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캐릭터들, 지루한 설명이 되고 만 텍스트 등이 편집 출판 과정에서 충분히 조율된다면 우리 창작 그림책 세계를 한 뼘 드높이는 작품이 되리라 믿습니다.
심사위원 곽영권 조선경 이상희 |